NRR★STAR

글 작성자: NRR


■■■군사정보부


               송달


■■■유럽방면군정보부          복본번호:6


■■■아시아방면군정보부       복본번호:7


일련번호: TS-■■■■SAD00*


기밀등급: II급


열람권한: 중령 이상




  2045년부터 2061년은 인류 역사가 암흑과 압제로 채워진 시기였다. 제3 차 세계 대전이 초래한 혼란은 온 세계의 경제체계와 생산능력을 박살내었다. 전시동원과 계속되는 전투는 인적자원을 대량으로 소모시켰다. 붕괴 구름의 확산은 끊임없이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땅을 축소시켰고,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율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인력'은 희소한 자원이 되었고 날마다 그 값이 높아졌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배를 많이 불리는 군수기업들조차 인력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비용을 줄이면서 생산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몇몇 중요 군수공장들은 생체공학 인형을 연구제작하여 살아있는 노동력을 대체하고자 하였다. 


■산업용 골격로봇 시대


  1세대 산업용 인형은, 정확히 말하면 '인형'이라 부를 수 없었다. 대신 '로봇'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렸다. 설계 사상이 생산의 편의성에 치중되어 있었기에,  초기의 인형은 꽤나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인건비 절감과 생산속도를 위해, LBT 제너럴 매뉴팩쳐링 사는 2033년 스스로 조립라인용 골격로봇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골격로봇에 요구된 사양은, 고강도의 노동에도 견딜 수 있는 신뢰성, 충분한 작동시간 (4시간 이내에 완충될 것,  6시간 이상 작동할 것) , 부품 교체 등의 정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높은 범용성, 그리고 범용성을 위해 소프트웨어 교체로 손쉽게 용도를 변경할 수 있는 유연한 AI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사양은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었기 때문에, 개발팀을 이끌던 비트킨 케이트는 요구서를 받아들고는 머리를 싸매야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최초의 산업용 골격로봇의 실험기가 완성되었고, ALR-50(T)[각주:1]라는 내부용 분류코드가 붙었다. 최초의 골격로봇은 제조원가가 너무 높았다. 게다가 로봇을 설치하는 데만 130인시가 소요되었고, 그렇다고 작업 수명이 긴 것도 아니었다. 비트킨 팀은 즉시 개선 작업에 들어갔고, ALR-50E2(T)와 ALR-51C(T)라는 후속 모델을 내놓았다. (두 모델을 비교하려면 이 사진을 보라.)


  출력 테스트 결과 ALR-50E2(T) 골격로봇은 하루 평균 20시간의 작업을 매일 수행할 수 있었고, 배터리 지속시간과 완충 시간도 요구사항을 만족하였으며, 또한 모듈식 디자인으로 유지보수 비용을 상대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하고 둔중한 구조 탓에, 다양한 작업에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은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비트킨 팀은 ALR-51C(T)를 개발하여, 범용형 설계와 고지능 AI의 결합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ALR-51C(T)의 테스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이 모델은 복잡한 구조 때문에 출력 테스트 결과가 ALR-50E2(T)보다 뒤쳐졌다. 또한 하드웨어에 적합한 AI시스템이 없었던 탓에 작업유연성 테스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였다. 최종적으로 LBT사는 예상대로 ALR-50E2(T)를 선택하였고, 최종개량형 ALR-52P를 양산형 모델로 채택하였다. 한편 선택받지 못한 ALC-51C(T)는 개발이 중단되었다. 프로젝트의 리더인 비트킨은 ALR-51C(T)의 거대한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ALR-51C(T)를 더 개선하고 적합한 AI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ALR-51C(T)의 범용성은 당시 기술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 정세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시장은 점차 축소되었다. LBT 사는 골격로봇의 개발을 두 종류나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자금이 많지 않았다. ALR-52P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기술 요구사항을 충족하였고 개량으로 더욱 성능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비트킨도 ALR-52P 시리즈의 후속 개발에 매진하면서 점차 ALR-51C(T)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ALR-51C(T)는 15개월 후 또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빌쥐스트 일렉트릭 사는 직렬화된 자동운행 시스템을 개발해 달라는 유럽연합군의 의뢰를 받았다. 이것은 주로 '강총병 (Assault Atillery)' 계열 차량에 쓰인 시스템으로, 자동화된 운용 업무를 위한 것이었다. 빌쥐스트 사의 제6 개발실 기술주임 미하치가 개발을 주도하였다. 프로그램의 호환성을 담보하기 위해 빌쥐스트 개발팀은 프로그램을 하드웨어에 설치하고 테스트하여 충분한 데이터를 얻고자 했다. 처음에 개발팀은 시험용 하드웨어를 직접 연구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계획의 처음 단계에서 그들은 예상되는 하드웨어 제작비용이 너무 높다는 것을 깨닫고, 하는 수 없이 외부에서 적절한 후보를 찾기로 했다. 하드웨어를 물색하는 일은 처음엔 순조롭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필요로 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하치가 기술개발을 거의 포기하려 했을 때, 그는 사교파티장에서 로봇 프로젝트 총괄팀장으로 승진한 비트킨을 처음으로 만났다. 두 사람은 금새 마음이 맞았고, 비트킨은 기꺼이 자동운행 시스템의 하드웨어에 대한 기술지원을 약속했다. 결국 비트킨의 도움으로 미하치의 개발팀은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ALR-51C(T)의 완전한 자료와 거의 모든 실험 데이터를 얻었다. 자동운행 시스템의 설치와 ALR-51C(T) 모델과의 호환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어 곧 정식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단 두 달만에 엄청난 기술혁신을 이루어냈다.


  ALR-51C(T)는 그 유연성 덕분에 시스템 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기술팀은 조작성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로봇의 전체적인 구조를 뜯어고쳐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개조된 ALR-51C(T)는 새로운 분류코드 TD-01을 받았고, 개발인원들은 친근함을 담아 '아기'라고 불렀다. TD-01[각주:2]은 파츠를 갈아끼우는 것으로 다양한 차량의 조종법을 흉내낼 수 있었다. 자동운행 시스템은 예상보다 비교적 빠르게 완성되었고, 최종 시험 결과는 군부를 꽤 만족시켰다. 이 시스템의 성공은 강총병 계열 차량의 운용 비용을 엄청나게 절감시켰고, 유럽연합군 기계화부대의 지휘효율을 끌어올렸다. 빌쥐스트 사는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으로 거액의 이윤을 남겼고, 미하치 역시 엄청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미하치는 자동화 시스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자동운행 프로그램을 개선하여 자율AI를 만들어 TD-01에 탑재한다면, 군에 납품한 것보다 훨씬 폭발적인 기술 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날카롭게 알아챘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개발팀을 다시 불러모았고, LBT 제너럴 매뉴팩쳐링 사와 합작하여 비트킨의 팀에게 자율AI 개발 계획에 발맞추어 TD-01의 개량 작업을 맡겼다.


  미하치와 비트킨은 당초 자동운행 시스템의 개발 때 이미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TD-01 개량에 투자된 엄청난 자금은 비트킨을 흥분시켰고, 그는 전혀 새로운 인형을 개발하겠다는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미하치와 비트킨은 연구팀을 하나로 합쳐, 공작기계와 다중터미널 컴퓨터가 갖춰진 건물로 연구소를 옮겼다. TD-01은 6개월 간의 개량을 거쳐 구조 강도와 소프트웨어 호환성이 강화되었고, 보조 출력으로 소량의 실험적인 인공근육이 장착되었다. 개조를 마친 TD-01은 CSD-02[각주:3]로 개명되어 개조와 시험이 동시에 시행되었고, 미하치의 AI 개발팀은 시험 데이터를 토대로 코드와 파라미터를 조정하였다. 수 차례의 시험으로 CSD-02와 AI의 호환성은 끊임없이 올라갔다. 그러나 구조가 복잡하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트킨은 어쩔 수 없이 ALR-52P의 설계 파라미터를 이용해서 CSD-02의 부품 수량을 간략화하여야 했다.


  군대 뿐 아니라 일부 민간기업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회사들이 CSD-02의 지적재산권을 사들였고, 자신들의 연구소로 가져가 개량을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스치벨 선진과학기술공업 사였다. 스치벨 사는 AI실험 보고서에서 인형의 잠재력을 깨달았고, 빌쥐스트 사와 접촉하여 CSD-02와 그 플랫폼의 개발 및 개량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였다. 강총병 차량의 AI 자동운행 시스템은 개발 당시엔 유인 조종을 완전히 대체할만한 성능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인 조종 시험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초기의 유인 시험에서 테스트 드라이버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빌쥐스트 연구팀은 AI시스템 개발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부는 빌쥐스트 연구진에게서 유인조종에 대한 개선을 받기도 마땅치 않았다. 이로 인해 CSD-02 플랫폼의 개발권을 얻어낸 스치벨 사는 군부의 의뢰를 받고 강총병의 부하설비를 테스트할 실험용 인형을 개발하게 되었다. 스치벨이 개발한 인형은 최대하중이 증가되었고, 실험의 편의를 위해 중요 노드에 중력 센서가 내장되어 인형의 동력과 부하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었다. 센서 시스템을 내장한 첫 인형은 2041년 완성되어, 인형코드 CSD-03H를 부여받았다. 이 센서 시스템은 후속 인형들에도 계속 채용되어 인형의 유연성과 동작 정확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군대는 실험용 인형의 성공으로 한층 더 인형 기술을 주목하였다. 두 회사가 나란히 기량을 뽐내는 가운데, 군부는 빌쥐스트 사에 연락하여 두 회사가 손을 잡고 군용 인형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인형개발회사와 유럽연합군의 합작은 순조로웠다. 새로운 인형과 그 AI의 연구는 곧 몇몇 군 고위 간부의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기계 병사를 양성하여 군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유혹이 그들을 자극했다. 그 중 육군 총참모부의 카터 장군이 인형 프로젝트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인형이 기술 표준만 달성한다면, 보병을 지상 화력 플랫폼으로 대체하여 사상자를 크게 줄이고 1인당 화력 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는 프로젝트를 위한 특별예산을 따낼 수 있게 상층부를 설득하고, 두 개발사의 합작을 관리감독하는 전문 내부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인형 보병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두 회사는 공동으로 출자하여 좀 더 군사용으로 특화된 인형 화력 플랫폼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회사를 새로 설립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중요 작전 원형기계제조회사', 이후의 I.O.P.[각주:4]인형 사였다.


■1세대 전술인형 시대


  I.O.P.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정식으로 설립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46년, 이미 제3 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I.O.P.의 설립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거액의 자금과 군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신형 인형 개발에 곧바로 전념할 여유가 없었던 비트킨은 먼저 긴밀하게 협력할 파트너를 물색했다. 비트킨에게 인형의 가능성은 창대했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야 할 기술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비트킨의 전략은 군부가 요구하는 전투용 사양을 만족시키는 것 말고도, 거대한 민수용 서비스업·경비업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I.O.P.는 활동 범위를 전세계로 잡았고 미국, 우크라이나, 중국에 각각 전액출자 자회사를 설립했다. 우크라이나 지사는 당시 한창 철혈공업제조 사와 업무상으로 교류하는 관계였다. 뜻밖에 철혈공업제조 사는 CSD-03H의 프로토타입보다 오히려 ALR-52P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인형의 구조 강도와 내구성을 중시하는 동유럽의 특색이었다. 비트킨의 처음 구상과는 꽤 달랐지만, 철혈이 제시한 투자액은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또한 철혈은 I.O.P.의 연구진과 함께 인형의 자율AI 연구를 진행하길 원했다. 이것은 비트킨이 바라던 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3 차 세계 대전이 2045년 발발하여 군부의 전투용 인형 주문이 쇄도하였다. 비트킨은 어쩔 수 없이 곧바로 회사 설립을 끝내고 군부의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엄청난 주문량을 다 소화할 수 없었던 I.O.P.는 일부 주문에 대해 철혈공조에 하청을 맡겼다. 그리고 기술문건 일부를 철혈에 넘겨 전술인형의 개량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당시 전술인형의 자율시스템은 비교적 취약해서 전장의 주전력으로는 부적절했고, 대다수의 인형이 후방 지역에 설치된 고정포대에 헌병으로 투입되었다. CSD 시리즈 인형은 너무 정밀한 탓에 고장을 자주 일으켰지만, 이에 반해 철혈이 ALR-52P를 개조하여 만든 '헌팅 굴(gull)' 시리즈는 전선에서 호평을 받았다. 전선의 장병들은 CSD 인형의 형편없는 성과를 보고 '이동식 표적'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붙였다. 이로 인해 군부는 곧 철혈공조로 거래를 틀었고, I.O.P.의 제품은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 이것을 본 비트킨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고, I.O.P.와 철혈의 관계는 점차 서먹해졌다. 신뢰성 문제로 고객을 빼앗겼음에도 비트킨은 유연한 맞춤형 인형 설계가 미래의 추세라고 굳게 믿었다. 3차대전 기간 내내 그는 인형의 자율시스템과 신뢰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트킨과 연구팀은 크게 낙담하였다.


  2049년,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하치의 제자가 인터넷 상에서 오픈소스 기술단체 '90wish'가 인형 기술에 대하여 집필한, 공개된 문건 중 일부를 발견했다. 이 문건을 꼼꼼히 훑어본 미하치는 시대를 앞서간 어떠한 깨달음을 느꼈고, 이것을 비트킨에게도 보내어 읽게 했다. 그 문서를 읽은 비트킨은 곧바로 90wish의 기술적 능력과 개발 이념이 엄청난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양한 루트로 90wish의 멤버들과 연락을 취하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90wish는 그 기술문건을 공개한 이후 아무 소식도 없이 거짓말처럼 종적을 감추었다. 러시아 내무부 사이버안전국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 기술문건을 공개한 것은 90wish가 사전에 합의한 사항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분열하였고 서로를 적대하게 되었다.


  비트킨은 내무부에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두 명의 전 90wish 멤버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는 거액을 들여 그들을 보호할 용역업자를 고용하였다. 전 90wish 멤버 페르시카와 리코는 함께한 일행 대부분을 잃고 I.O.P.의 세이프하우스로 호송되었다. 협상 끝에 페르시카와 리코는 비트킨과 함께 일하는 데 동의하였고, 세상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 비트킨은 위조한 신분으로 'Hermit' 이라는 작은 회사를 세웠고, 이후 잡비용으로 회계처리된 I.O.P.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Hermit은 I.O.P.에게 수많은 선진기술을 제공하였고, I.O.P.는 이것을 이용하여 2051년 CSD시리즈의 후속 모델[각주:5]의 성능을 개선하였다. 개장 완료된 최신식 군용 인형은 성공적으로 철혈에 빼앗긴 고객들을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CSD의 후계기는 노르드칸 전역에서 수많은 주요 지상전에 참가했다. 인형의 자율 성능은 여전히 부족했으나 지상을 통제할 병력이 빈약한 상황에서 병사들은 다수의 전술인형을 보내어 감시와 간단한 화력투사를 할 수 있었다. 인형은 공격과 방어에 투입할 병사를 대체하여 인적자원 소모를 줄였다. 전장에서의 피드백으로, I.O.P.는 유연성을 희생하여 CSD 시리즈의 부품 수를 줄이고 구조의 안정성을 높였으며, 방탄 외피와 티타늄 합금 골격의 밀도를 높였다. 개장완료된 인형 중 주요 기종은 ACD-50형과 51형, R형, T형 군용인형이었다. ACD-50형 군용인형은 두부를 축소시켜 피탄 확률을 줄였고, 카메라는 10mm 두께의 강철판으로 감싸 파편에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시각 제어와 무선 제어 모듈은 비교적 유연한 복부로 옮겨졌고, 통신기와 CPU는 강철판으로 보호받는 흉부로 옮겨졌으며 도파관으로 연결되었다. 목과 척추에 여분의 유선조종 잭을 만들어, 인형의 자율시스템이 망가져도 유선으로 작전을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ACD-50형의 스캐닝 거리와 작전 반경은 220m였고, 1회 충전으로 활동모드로 28시간, 대기모드로 55시간 동안 작동하였으며, 가격과 유지비용도 높지 않았다. ACD-51형은 2051년 양산되었는데, 주된 개선점으로는 무게중심을 낮추어 중화기 운용을 용이하게 하였고, 수납공간을 넓히고 최대하중을 늘려 탄약 적재공간의 부족을 해결하였다. 스캐닝 거리와 작전반경은 200m였으며, 1회 충전으로 활동모드로 21시간, 대기모드로 48시간 동안 작동하여, 데이터 상으로는 50형에 비해 약간 뒤떨어졌다. 전반적으로 성능이 향상된 점을 고려하여, 군부는 이런 사소한 수치 저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군에서는 때때로 전투 외에도 무거운 것을 운반하는 데 인형을 사용하곤 했는데, 고장률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내구성도 굉장히 좋아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다. R형과 T형은 주로 정찰과 특수작전을 위한 모델이었는데, 생산량이 적어 특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 ACD 시리즈 군용인형은 총 11,730대가 생산되었으며, 철혈은 그 중 2,300대를 맡아 생산하였다. ACD 시리즈는 제3 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쓰인 인형이었다.


■2세대 전술인형 시대


  2051년 3차 대전이 막을 내렸다. 전쟁이 끝나자 민간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하여, 민간의 생산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할 인력, 그리고 개인의 경비용역에 대한 수요가 날로 늘어갔다. 몇몇 규모 있는 경비업체와 다국적 자원기업들이 I.O.P.와 직접적 업무관계를 맺었지만, 그 중에서도 G&K 사[각주:6]는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다. G&K의 창립자는 '브레조비치 크루거'로, 페르시카 호송작전 당시 러시아 내무부 측 전술지휘관으로 복무중이었다. 그는 그 작전의 성공으로 보수를 받은 뒤, 내무부를 그만두고 그 돈으로 2053년 자신의 경비용역회사를 차렸다. G&K 사는 I.O.P.사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고 민수용 전술인형의 구매비용이 인간 병사를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크루거는 전술인형의 사용에 열과 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크루거는 비트킨과도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I.O.P.는 크루거가 Hermit과 직접 연락하여 데이터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허용하였다.


  페르시카는 G&K 일선에서 보고받은 대량의 피드백 데이터를 기초로, CSD-06, 07, 08과 SST-02A, 03의 개량과 연구개발, 그리고 민간시장을 겨냥한 Service Doll 시리즈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 중 Service Doll의 초기형은 감정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추가하고 성별이 뚜렷하게 외관을 디자인하여 점차 민간 시장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후 만들어진 제품들 역시 우아한 외모와 우수한 인간-컴퓨터 의사소통 능력, 그리고 맞춤형 서비스로 대호평을 받았다. 정부와 기업조직, 민간 서비스업과 몇몇 개인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하여 I.O.P.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지금까지 축적해 온 기술을 이용하여 페르시카는 '2세대 전술인형' 의 개념이론을 제시하였다. 페르시카의 연구방침은 비트킨의 지지를 얻었고, 개선된 전술인형은 I.O.P.에 더 많은 수요를 가져다 줄 기반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리코는 이 구상에 동의하지 않았다. 리코의 전공분야는 인형보다는 인공지능 쪽이었다. 그는 구조의 혁신과 네트워크화 인형의 미래는 자율AI의 동작 효율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인형AI의 후속 연구를 위해 자금 지원을 받기를 바랐다. 리코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낙담하여 작업에 대한 열정을 점차 잃어갔다. 차츰 그는 페르시카와 I.O.P.의 의도에 끌려다니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몰래 철혈과 접촉하여 각종 사업 교류를 시작하였다. 철혈은 원 90wish 멤버를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였지만 리코는 I.O.P.의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철혈은 비밀리에 크루거와 만나, G&K에 리코가 철혈로 옮겨가는 동안의 무력 호위를 의뢰하였다. 크루거는 리코를 호위하고 리코가 근무할 철혈 공장을 지속적으로 경호하는 대신 그의 후속 연구자료를 공유할 것을 교환조건으로 내걸었다. 철혈과 크루거는 빠르게 합의점에 도달하였고 리코는 철혈의 지하 연구소로 완전히 소속을 옮겼다. 미리 합의한 대로 리코는 새로운 철혈의 생산공장 건립에 착수하였고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3년의 개발기간 동안 철혈의 ALR시리즈 인형의 성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I.O.P.는 금새 리코가 조용히 Hermit을 떠난 정황을 눈치챘지만, 경쟁상대의 실력에 대한 두려움과 오랜 단골을 잃을 우려 때문에 비트킨은 직접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제품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트킨은 페르시카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했고, 이것은 16Lab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리코가 Hermit을 떠난 후 페르시카는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가 인형에 미치는 중요성을 실감하기 시작하였다. 페르시카 연구팀은 식각 기술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잡았다. 90wish의 위협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페르시카는 마침내 인형 업계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었다. I.O.P.의 투자를 받은 페르시카는 연구팀의 규모를 키웠고 2057년 공식적으로 '16Lab' 이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충분한 인력을 확보한 그녀는 빠르게 'ASST' 낙인 기술을 완성하였다. 이 코딩 방식을 통해 인형의 무기와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혁신적으로 향상되었다. 낙인 기술은 오픈소스였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엔진을 다운로드 받아 필요한 대로 코드를 수정하고 인형의 행동 프로그램을 편집할 수 있었다. 페르시카는 연구팀 하나를 낙인 기술의 유지보수와 업데이트에 장기간 배정하여, 퍼스트파티인 I.O.P.의 각종 인형들에 대해 낙인 기술의 적용과 조정을 수행하였다. 이로 인해 I.O.P.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도 면에서 오랜 기간 동안 타사에 비해 우위를 점하였다. 페르시카는 지나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인형의 작전 네트워크 연결구조를 재구축하였다. 새로운 프로토콜을 설치한 인형들은 인간의 지휘가 부재할 시 제한적인 집단 자율행동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형 팀은 네트워크를 통해 사전에 조율된 협동작전을 펼 수 있었고, 명령 수신, 탐지, 분석, 동기화 등 다양한 팀 단위 행동이 가능하였다. 식각 이론을 기반으로 페르시카는 인형의 지휘 네트워크 구조를 연구하는 데 집중하였고, 이 기술의 완성으로 인간은 인형 하나에 대한 명령으로 인형 팀 전체를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동 분석 소통 시스템은 테스트 결과 인형의 효율을 37%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16Lab은 이 새로운 네트워크 인형지휘체계를 '더미 네트워크' 로 명명하였다. 지휘 네트워크의 완성과 동시에 페르시카는 같은 모델의 인형을 구분하여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형을 하드웨어에 따라  '호스트'와 '더미'로 분류하였다. CPU와 동기화 장치는 호스트 인형에 장착하였고, 더미 인형에는 하드웨어를 줄이고 각인 소프트와 탐지 소프트만 설치하였다. 이 방법으로 호스트 인형의 제조원가는 증가했으나 동시에 더미 인형의 원가가 낮아져, 팀에 충분히 많은 인형을 구매하여 배치한다면 전체 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덕분에 I.O.P.의 제품은 가격 면에서도 한층 더 우월한 고지에 설 수 있었다. 2057년 이후 생산된 인형은 표준화된 모듈 구조로 만들어졌고, 빠짐없이 낙인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와 더미 네트워크 시스템이 장착되었다.페르시카는 표준 모듈화 생산된 인형을 2세대 전술인형으로 정의하였고, 완성된 기술 가이드라인을 공표하여 인형제품과 조작시스템의 생산규격을 통일하고자 하였다.


  한편 이때 리코는 AI 알고리즘과 모듈화 설계에 자신만의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순환알고리즘을 사용한 인공지능 '엘리사' 의 제작을 3차 대전 당시 이미 시작하였다. 그는 인형들의 지휘계통 전체를 엘리사에 의탁한 나무 구조를 조성하였는데, 이 구조는 직통 연결을 통한 지휘효율과 암호화 모드 및 알고리즘 면에서 강점이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일반적인 총기와 호환시킨 페르시카와 달리, 리코는 철혈의 우수한 공업능력에 힘입어 화력이 훨씬 강력한 입자 무기를 개발하였다. 리코는 이 무기를 정식 상품화하기 전 인형에 설치하고 테스트하여, 이를 기반으로 인형을 개조하고 강화했다. 철혈의 인형은 I.O.P.의 인형처럼 소프트웨어를 통해 다양한 총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무기와 일체화된 설계로 제작되어 인형 한 기의 성능은 월등히 뛰어났다. 그러나 2061년에 터진 '나비 사건' 이후 철혈은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와 관련된 자료 역시 S09 구역 내에 봉인되었다. 철혈의 제품이 업데이트가 끊긴 이후 I.O.P.의 인형은 기본적으로 주요 시장을 독점하였다. 군과 민간 경비업체에 공급하는 전술인형 외에, I.O.P.의 비무장 민수용 인형 역시 다양한 기종으로 발전하였다. 2세대 전술인형의 규격이 통일된 후에도, 페르시카는 인형의 보안 프로그램의 제어 편의성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계속해서 모듈 구조의 최적화를 진행하였다. 그는 전술 관련 소프트웨어를 화기관제 코어와 통합하여 패키징하였다. 화기관제 코어는 다중 채널 인터페이스를 채용하여 낙인 소프트웨어와 매우 호환성이 좋았다. 낙인 소프트웨어는 화기관제 코어 내에 직접 설치되었기 때문에, 인형의 전투능력을 해제할 필요가 있으면 간단하게 코어만 제거하면 충분했다.


  2062년 이후 I.O.P.는 전술인형과 민수용 인형의 모듈 통합을 실현하였다. 군부의 요청으로 남겨진 군용 ACD 시리즈를 제외하고, 비 군용인형의 기종은 6개로 압축되었다. SST-05, 05A, 05A2, 그리고 SSD-62D, F, G형이었다. SST는 I.O.P.의 유서 깊은 전술인형 브랜드로, SST-05 시리즈는 I.O.P.의 플래그십 기종이었다. 처리 속도가 빠르고, 무기와의 호환성이 좋았으며, 감정 시뮬레이션에 더 많은 저장공간을 할당하여 인간-컴퓨터 의사소통이 보다 자연스러웠다. 05형은 특수전술용 초기 모델로, 후속기에 비해 성능은 다소 떨어졌지만 마인드 클라우드맵의 저장용량이 월등하여 작전기록 데이터를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05A형은 특수전술용 개량형으로, 05형의 마인드 클라우드맵 데이터를 덮어씌울 수 있게 되어 인형효율이 향상되었고,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줄었으며, 하드웨어 수준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각주:7] 05A2형은 특수전술용 커스텀 모델로, 성능은 동시기 군용인형과 비슷했지만 그만큼 고가였으며, 인간과의 교류가 크게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I.O.P.는 해당 모델의 감정 시뮬레이션과 기타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공간을 제한하였다. 또한 05A2의 가장 큰 특징은, 클라우드맵 데이터가 독립적으로 암호화되고 저장되어 비밀 임무를 더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SSD 시리즈는 I.O.P.가 민간시장과 전술 시장에 내놓은 새 브랜드로, 인간사회에 쉽게 녹아들 수 있도록 감정 시뮬레이션 연산에 많은 공간을 할당하였으며, 동시에 서드파티 메이커의 의사소통 시스템을 탑재하여 일반인들과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SSD 시리즈의 중요한 특색은 외모의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중 D형은 서비스업용, F형은 의전용으로 이용되었는데, 두 기종 모두 고객이 선택 가능한 외모 모듈의 개수가 수백 종류나 되었다. 이 때문에 SSD 시리즈는 민간시장의 수요를 크게 만족시킬 수 있었다. 거기다 SSD 시리즈는 화기관제 코어를 장착하여 전투에서도 꽤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업체나 경찰 등 제한적인 공격능력을 필요로 하는 민간의 수요 역시 충족할 수 있었다. G형은 특수사건용 커스텀 모델로, 경찰용 이상 군용 이하의 성능이 필요한 특수사건을 전담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 이 모델은 D형이나 F형보다 가격이 비쌌으며 주문제작시 고객의 선택가능 범위도 더 넓었다. 생산량과 가격대비 효율 문제로 이 모델의 수요와 공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2세대 전술인형 시대 이후......

  1. ALR은 Auto Labor Robot의 축약형이다. C는 상용, T는 실험용을 나타낸다. [본문으로]
  2. TD는 Testing Doll의 축약형이다. [본문으로]
  3. CSD는 Common Strengthen Doll의 축약형이다. [본문으로]
  4. I.O.P.는 Important Operation Prototype의 축약형이다. [본문으로]
  5. 주요 생산 기종인 CSD-08A, CSD-08Bs는 IAD 시리즈에서 파생된 것이다. IAD 시리즈는 제2 대 전술인형의 모듈화된 메인 내부구조의 원형이 되었다. [본문으로]
  6. 정식 명칭은 그리폰&크루거 군사계약 및 보안자문 용역회사. [본문으로]
  7. G&K는 05A형 인형에 매우 만족하여, 최전선에서의 대부분의 작전에 이 제품을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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